잠들어 있는 피의사실공표죄를 깨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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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어 있는 피의사실공표죄를 깨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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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2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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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어 있는 피의사실공표죄를 깨우자.

 

형법 제126조는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소가 이루어지기 전에 수사기관이 수사내용을 자유롭게 공표하면, 피의자는 사실상 언론과 여론의 재판을 받게 되어 인권이 침해되기 때문에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고 노무현 대통령 일가가 피아제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검찰발 기사였다. 2008년부터 피의사실공표로 317건의 사건이 접수되었는데 단 한건도 기소되지 않았다. 사실상 피의사실공표죄는 유명무실 한 것으로서 법전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법원에서 피의사실을 공표한 수사기관의 사용자로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여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는 경남기업 성완종 회장으로부터 특별사면을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수사 결과 발표에 반발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5,000만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받았다. 법원은 헌법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점, 기소 전 단계에서 수사기관이 단정적인 표현은 피했어야 했는데도 피의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한 증거까지 나열함으로서 이를 듣는 언론이나 국민들이 피의사실을 저질렀다고 믿게 한 점등을 들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창원지방법원 2015가단79600판결). 이후에도 한 경찰관 개인이 방송사 기자에게 전화통화로 피의사실에 대해 말했고, 이것이 방송된 일이 있었는데 피의자가 방송사 및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일이 있었다. 이에 법원은 방송사에 대해서는 보도의 공익성을 인정하여 청구를 기각해지만, 국가에 대해서는 내용의 공정성이 있다고 해도 공표의 절차와 형식 등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 2,000만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였다. 수사기관이 정해진 공표절차 및 관행을 따르지 않고 개인적인 전화 통화를 통해 피의사실을 알린 경우였기 때문이다(2018285274). 법무부가 2010년에 마련한 인권보호를위한수사공보준칙(이하 공보준칙)“을 살펴보면, 공보준칙 제10조에서는 예외적으로 기소 전 공개를 허용하는 사유로서, (1)사건관계인의 명예 또는 사생활 등 인권을 침해하거나 수사에 지장을 초래하는 중대한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를 방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 (2) 범죄로 인한 급속한 확산 또는 동종 범죄의 발생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경우, (3)공공의 안전에 대한 급박한 위협이나 그 대응조치에 관하여 국민들이 즉시 알 필요가 있는 경우, (4)범인 검거 또는 중요한 증거발견을 위하여 정보제공 등 국민협조가 필수적인 경우를 들고 있다. 공보의 방식과 관련해서는 원칙적으로 소속 검찰청의 장 승인을 받은 공보자료를 배포하는 방식으로 하되, 사안이 복잡하거나 언론에서 확인을 요청하는 사안 등에 대해서는 구두 브리핑을 허용한다(공보준칙 1112). 공표의 범위와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목적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사항만을 공개하도록 규정하면서 그 대표적인 내용으로는 1)익명보도가 원칙이지만, 공적 인물인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실명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고, 2)사건관계인의 사생활, 사건관계인의 진술, 증언 내용, 증거의 내용 및 증거가치 등 증거관계 등에 대해서는 공개를 금지하고 있다(공보준칙 13조 내지 21) 그렇다면 공보준칙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 불행히도 그렇지가 않다. 피의사실 공표에 대하여 무죄추정을 받는 피의자에 대한 예단을 생기게 하고 명예를 침해할 수 있고, 피해자에 대하여도 사생활의 평온 및 명예훼손의 개연성이 있다. 근본적으로 수사기관은 피의사실 공표죄의 수범자이자 수사권 행사의 주체라는 중첩적 지위에 있어 실질적으로 처벌을 기대하기 어려운 면이 있으므로 피의사실 공표죄를 사문화하지 않기 위하여 법률에 위법성 조각사유(형사 처벌 면제 사유)를 신설하여 일정한 범위에서 합법적으로 수사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하는 등의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 이에 제19대 국회에서는 범죄로 인한 피해의 급속한 확산 또는 동종 범죄의 발생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경우 등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위법성 조각사유를 형법에 규정하는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260조 제1항에서는 피의사실 공표죄를 재정신청의 대상으로 하면서 피공표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재정신청을 할 수 없다는 단서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러한 단서 규정을 삭제함으로서 검사가 피의사실 공표죄에 대하여 불기소 처분을 하였을 때 피공표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제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서 실효성을 제고하자는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제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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